제레미가 은근하게 물어 온 것은 그때였다.<br>아까 방 앞에서의 묘한 기류를 제레미도 읽었거나, 아니면 지금 내 입에서 나온 그의 호칭이 평소보다 딱딱했던 모양이다.<br>그래도 제레미는 그 이유를 카시스 페델리안과 나 사이의 분란 때문이라 생각한 듯했다.<br>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홀랑 덧붙이기까지 했다.<br>“흠,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말이야. 원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하더라.”<br>이건 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그냥 흘려듣고 화제를 바꾸었다.<br>“그보다 제레미. 내가 지금 부른 건, 오늘 당장 처리해야 할 일 때문인데.”<br>나는 책상 위에 있던 서류 중 일부를 제레미에게 건넸다.<br>“나한테 갑자기 급한 안건이 올라와서 시간이 좀 촉박해졌어. 그래서 이건 너한테 맡기고 싶은데 괜찮아?”<br>“어, 누나가 웬일이야? 그래, 내가 할 테니까 이리 줘.”<br>제레미는 흔쾌히 내가 맡긴 일을 받아 갔다.<br>“고마워. 볼일은 이게 다니까 그만 나가 봐도 돼.”<br>그런데 순간, 제레미가 독침에 쏘이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경직시켰다.<br>“누나...... 나한테 화났어?”<br>이어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굉장히 뜬금없었다.<br>뭐지? 혹시 내 말투가 다른 때보다 쌀쌀맞았나?<br>“아니. 내가 너한테 화날 일이 뭐가 있다고.”<br>“그런데 왜 그렇게 웃어?”<br>말투 문제는 아니었나 보다.<br>그런데 의미를 더 알 수가 없어져서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br>“내 웃는 얼굴이 왜?”<br>“되게 옛날처럼 웃어서.”<br>“.......”<br>제레미는 숨까지 죽이고 나를 쳐다봤다.<br>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계속 웃으려고 했는데, 그의 얼굴을 마주하는 동안 미소가 점점 사그라졌다.<br>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내 웃는 얼굴이 그에게는 굉장히 무섭고 끔찍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br>그런 주제에 또 내 얼굴이 씻겨 내린 듯이 무표정해지자 낯빛을 한결 더 희게 굳히는 게 웃겼다.<br>나는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br>“옛날처럼 웃는 게 어떤 건데?”<br>제레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br>“...... 그러고 보니까 아까부터 이상했어.”<br>그는 이제 완전히 내 변화를 확신한 것 같았다.<br>“날 대하는 태도도 묘하게 거리감 들고, 카시스 페델리안한테도 갑자기 쌀쌀맞고....... 아니, 후자는 그렇다 쳐도.”<br>어릴 때보다 젖살이 빠져서 그런지, 입술을 꾹 깨무는 얼굴이 내가 모르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어른스러웠다.<br>“뭔가 숨기고 있는 거 맞지? 조금 전에 설명해 준 거 말고 다른 문제가 또 있는 거 아니야?”<br>제레미는 예전보다 눈치가 빨라진 것 같았다.<br>아니면 내가 생각보다 스무 살의 나답지 않게 행동했든가.<br>“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아까 내려와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바쁘게 움직인 거야? 평소에는 시간 관리도 칼 같으면서 오늘은 이렇게 나한테 일을 덜어 줘야 할 정도로 시급하고 중차대한 일인 거야?”<br>그것도 아니면....... 제레미가 내 예상보다 나하고 가깝게 지냈던 건지도 모른다. 내 사소한 변화조차 알아볼 정도로.<br>나는 시야에 비친 제레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br>“누나가 그렇게...... 날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것 같은 눈으로 응시하면서 마음에도 없이 웃으면 걱정돼.”<br>서류를 움켜쥔 제레미의 손이 뼈대가 도드라질 정도로 꽉 쥐어져 있었다.<br>“물론 예전에 누나가 약속해 준 말을 못 믿는 건 아닌데....... 갑자기 예전처럼 그렇게 벽을 세운 것 같은 얼굴로 쳐다보면, 또 날 두고 혼자 어디론가 가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단 말이야.”<br>무릎 위에 올려 둔 내 손도 티 나지 않게 움찔 떨렸다.<br>제레미가 미처 숨기지 못해 내게 드러낸 것은, 이전에도 그에게서 종종 목격한 적이 있던 불안감이었다.<br>내게 애정을 갈구하는 제레미를 때때로 애처롭게 여긴 적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일부러 더 냉정하게 외면했었다. 나중에 발을 빼지 못할 정도로 깊은 관계는 만들고 싶지 않아서.<br>그런데 제레미는 그런 나를 알고 있던 모양이다.<br>게다가.......<br>지금 그가 한 말에 의하면 결국 내가 이 애를 한 번 버렸었다고.......<br>“나도 내가 아직 누나한테 의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믿음직스럽지는 못한 거 알아.”<br>내가 비밀을 만들고 거리를 둔 사실에 꽤나 속이 상했는지, 날 보는 제레미의 눈가가 약간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br>“그래도 이제는 뭐든 같이 상의하자고 누나가 그랬잖아.”<br>어쩜 저렇게 비 맞고 버려진 새끼 짐승처럼 나를 쳐다보는지 모르겠다.<br>“그러니까 무슨 문제인지는 몰라도 또 누나 혼자 전부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최소한 나도 같이 걱정하게 해 줘.”<br>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마주 보다가 이내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을 뗐다.<br>“...... 내가 너한테 뭐든 다 상의하겠다는, 그런 얘기를 했었다고?”<br>내가 또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제레미의 눈썹 사이에 작은 주름이 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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