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종총] 애 1
1.
어젯밤의 남자는 매너가 없었다. 한 군데 유독 집착하는 변태인지 왼쪽 젖꼭지를 험하게 씹어놓았다. 오른쪽이 너무 멀쩡해서 왼쪽이 더 아픈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종인은 코까지 골며 잠든 남자의 벗은 뒷모습에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며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새끼야, 하고 속으로 빌었다. 아무렇게나 목폴라 니트를 뒤집어 입느라 머리가 엉망으로 헝클어졌다. 모텔에서 나오기 직전, 손에 물을 축여 대충 머리를 넘겨 정리했다. 짓씹힌 젖꼭지가 내내 우릿했다. 종인은 코를 훌쩍이며 코트깃에 코끝까지 푹 파묻었다. 바람이 날카롭게 드러난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금세 귀 끝과 코끝이 발갛게 물들었다. 모텔 앞에서 겨우 잡아 탄 78번 버스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잔뜩 붐볐다. 그 혼잡한 인파에 파묻혀 버스가 흔드는대로 흔들리면서 종인은 왠지 이들처럼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괜히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해졌다. 그러나 따가운 젖꼭지가 아무렇게나 앞에 선 아저씨의 등짝에 비벼지는 통에 그러한 감상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종인은 옷을 벗어 던졌다. 빈 집은 종인이 어제 나가기 전 돌려놓은 난방으로 후끈후끈했다. 빨래 바구니에 속옷까지 싹 벗어 던져놓고 곧장 욕실로 가 샤워부터 했다. 내내 따갑더라니 거울 속 벗은 가슴 위 젖꼭지는 유륜 가장자리까지 벌겋게 달아 있었다. 샤워볼에 바디워시를 지나치다싶을만큼 푹푹 짜 거품을 잔뜩 내고 온 몸을 구석구석 문질러 닦았다. 샤워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충 물기만 닦아 내고 종인은 물발자국을 정신없이 남긴 채 곧장 침실로 들어갔다. 두툼한 이불을 걷고 맨몸인 채 들어간 종인이 이내 몸을 말고 눈을 감았다. 잠은 급류처럼 밀려들었다. 어젯밤의 섹스는 별 한개짜리 섹스였다. 얼굴은 반반했지만 무식하게 들쑤시는 타입이었고 혼자 흥분하고 혼자 가버렸다. 어정쩡히 발기한 종인의 것을 빨아주긴 했지만 혀 쓰는 것도 시원찮아 다리 사이를 축축하게만 만드는 그 얼굴을 치워버리고 종인은 스스로의 것을 쥐었다. 눈을 꾹 감은채 상상한 얼굴은 방금까지 살을 섞던 남자가 아니었다. 종인은 다른 이름을 부르며 사정했다. 마른 배에 튄 종인의 정액을 닦아주던 남자가 다른 이름을 부르는 종인의 비매너에 대해 서운함을 표했다. 그는 종인을 퍽 마음에 들어했던 것이다. 네 시원찮은 좆질이 더 비매너가 아니냐고 쏘아붙이려다 종인은 그저 희미하게 웃고 말았다. 종인은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익숙해서 속이 아리는 향이 콧속 깊이 스며들었다. 세훈의 부재가 길어졌다. 어제 오후의 통화에서 세훈은 남미 여자들의 건강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종인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심술궂게 '성병 조심해.' 했을 뿐이다. 수화기 너머 먼 곳의 세훈은 크게 웃었다. 종인은 세훈의 벌어진 작은 입, 웃느라 드러날 귀여운 아랫니를 떠올렸다. 문조처럼 작고 붉은 입술이 한껏 벌어져 입꼬리가 팽팽히 당겨 웃는. 웃는 세훈을 상상하면서, 종인은 발기할 것 같았다.
"여기서 난 섹스 안 해."
세훈은 종인을 달래려는 의도였겠지만 종인에게 그것은 위로가 되지 못했다. 김종인에게는 당장의 오세훈이 필요했던 것이다.
"언제 돌아올 거야?"
"오래 걸리지 않을거야, 내 사랑."
세훈은 항상 이렇게 불확실했다. 종인은 별다른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의 불확실성마저 사랑했던 적이 종인은 있었다. 가끔 오세훈은 가늠할 수 없는 우주와 같아서 종인은 한없이 아늑하다가도 한없이 불안하다가 그랬다.
2.
"그 역마살이 어딜 가."
백현은 세훈이 한국을 비운 지 3주가 다 되어간다는 사실이 놀랍지도 않은듯 그렇게 말했다. 종인보다 세훈을 오래 보아온 백현은 가끔 병처럼 도지는 세훈의 방랑을 잘 알고 있었다. 세훈은 바람같은 애야, 세훈을 소개하는 백현은 간결했다.
"이번엔 어디래?"
"나도 몰라."
"하긴, 알아서 뭐해."
백현은 종인에게 독한 럼을 섞은 잔을 밀어 주었다. 흐리멍덩한 눈을 비빈 종인이 그걸 받아 들였다. 애초에 술이 잘 받지 않는 체질이지만 취하기라도 해야 잠을 잘 것 같았다.
"오늘 우리집 가서 자."
"오세훈 집이 이제 우리집이 된거야?"
"그게 뭐가 중요해."
"그거 뭐 유혹같은거야?"
백현이 데코레이션 용 생레몬을 으적으적 씹는 종인을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알아서 생각해."
"난 너랑은 안 자."
"이유가 뭔데."
"난 세훈이 오래오래 볼거거든."
"존나 시시해."
내가 말 안할게, 나랑 자.
종인이 테이블에 푹 엎드려 눈만 내어 놓고 백현을 향해 깜박깜박했다. 백현이 한숨을 푹 쉬며 가게의 레코드의 전원을 내렸다. 어차피 눈도 많이 오는 밤이었고 손님이라고는 김종인이 다였다. 순식간에 깔리던 음악이 멎으며 정적이 찾아왔다. 백현은 느릿하게 저를 담는 짙은 종인의 시선을 견디며 가게의 야외간판의 불을 내렸다.
"데려다 줄게."
백현이 두툼한 무스탕을 제 어깨에 걸치며 종인의 어깨를 짚었다. 어느 새 종인의 눈이 감겨 있었다. 숨소리는 느려지고 등은 조용히 들썩였다. 백현은 담배를 찾아 물며 제 알 수 없는 사촌동생의 애인의 잠든 얼굴을 한참 내려다 보았다. 그렇게 한참 보다가 종인의 주머니에서 울리는 전화기를 꺼내어 한참 액정 위에 뜬 낯선 전화번호를 응시했다. 세훈이라는걸 직감하고야 백현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는 왁자지껄했다. 들뜬 목소리의 세훈이 종인아, 불렀다. 백현은 벽에 붙은 시계가 새벽 네시를 가까이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종인이 자는데."
어느 페스티벌의 한가운데 세훈은 서 있는 것 같았다. 노랫소리와 악기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전화를 건 자는 말이 없었다. 백현은 뻐끔뻐끔 연기만 뱉고 있었다.
"동생아, 한국은 지금 새벽 네시야."
알려줘야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도. 멍청한 애도 아닌데 자주 이렇게 멋대로 굴었다. 그게 김종인 한정인 것 같아서, 백현은 입이 썼다.
-콘돔은 하고 섹스 해.
오세훈은 그게 꼭 되게 쿨한 것처럼 생각하는게 틀림없다. 사촌형과 제 애인을 공유하는 거, 그걸 알지만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는 아무렇지 않은 척 구는거. 그런데 그게 백현에게는 더 유치해보였다. 오세훈의 착각이 너무 귀여웠다. 그냥 그 순간에는.
"안에 쌌는데, 미안."
백현이 심술을 부렸다. 수화기 너머에는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노래와 음악 소리가 한창이었다. 침묵보다 무서운 소음이 지나고 별안간 통화가 뚝 끊겼다. 매몰찬 신호음이 백현의 귓가를 때렸다. 종인은 달게 자고 있었다. 엎드린 앞에는 씹다 뱉어 놓은 레몬 조각이 잔인하게 흩어져 있었다.
3.
종인은 세훈의 핸드폰으로 제 사진을 전송했다. 샤워를 마치고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맨 몸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서울엔 비가 많이 왔다. 저번에 한번 만났던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 만날래?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종인은 몸이 좋지 않다고 둘러댔다.
"마사지 해줄게, 홀딱 벗고."
재밌다고 킬킬 웃는데 종인은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땀 한번 쭉 빼면 금방 나을거야, 성적인 함의가 다분했지만 어떤 흥분도 솟지 않았다. 옷을 걸쳐 입지 않은 채 침대에 엎드려 나노블럭을 맞추던 종인이 듣기 싫다는듯 통화를 종료했다. 침대 위를 꾸무적 대는 매끈한 알몸이 침대 시트를 아무렇게나 흐트렸다. 종인은 가장 작은 조각 중 하나를 잃어버려 조금 신경질이 솟은 상태였다. 세훈이 전화가 온 건 그 때였다.
-종인아.
종인은 이름이 불리자 풋 웃었다. 세훈이 목소리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그냥 듣기만 해도 좋았다. 종인이 미끈한 다리를 침대 시트에 비볐다. 이름만 불렸는데도 척추께가 찌릿했다. 목소리에 매만져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사진 예뻐.
"실시간이야."
-살 빠진것 같아.
"나 흥분했어."
노골적인 그 말에 수화기 너머 세훈이 웃었다. 아이처럼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만져주지도 않았는데 바짝 솟은 젖꼭지가 메마른 침대 커버에 아무렇게나 비벼졌다. 종인의 손이 다리 사이를 더듬었다. 뿌리께부터 피가 들어 차 있어 반쯤 단단했다. 종인이 성기를 쥔 손에 힘을 꾹 주었다. 낮게 입안에서 신음이 터졌다.
-다리 벌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데 만져줘.
"응."
길들여진 짐승처럼 고분고분히 종인이 구멍과 고환 사이, 그 매끈한 회음부를 훑었다. 세훈이 병적으로 집착하는데였다. 발기한 성기 끝으로 비비기도, 손끝으로 문대기도, 혀로 핥아 적시기도 좋아했다. 종인은 그럴 때면 회음부 주변 가장 예민한 곳에 세훈이 혀나 손, 성기가 닿이도록 부던히 애를 쓰곤 했다. 성기는 이미 끝까지 발기해 있었다. 삽입 자위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종인은 제 성기를 야무지게 쥐고는 몸을 둥글게 말았다. 더운 숨이 재차 터져 나왔다.
-젖꼭지 빨고 싶다.
"응...으응..........."
-안에 잔뜩 싸고 싶어.
"세후나아......."
종인이 할딱거렸다. 세훈이 낮게 웃었다. 조금 급한 마음이 들어 종인은 참지 못하고 성기를 흔드는 손에 힘을 주었다. 팔뚝에 핏줄이 굵게 솟았다. 긴 사정을 하며 종인은 신음을 참지 않았다. 곧 단단한 성기 끝에서 멀건 정액이 터졌다. 발끝과 손끝이 바짝 펴지며 사지가 버르르 떨렸다. 세훈은 항상 사정한 종인의 예민한 끝을 핥아주곤 했다. 그러면 극도로 예민한 살덩이가 다시 자극받으며 온 몸의 중추신경계가 뒤흔들렸다.
-기다려, 내사랑.
불확실하게, 통화가 끊겼다. 종인은 조금 식은 몸으로 정액이 튄 나노 블럭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아무렇게나 침대 밑으로 밀어 두었다.
4.
"콘돔 없이는 안 해."
탄탄한 허벅지를 만졌더니 눈치 빠르게 클럽에서 따라나온 종인은 클럽 뒤 쪽 골목에 밀어붙여져 애무를 받다가 바지가 끌여내려지자, 꽤 야무진 소리를 했다. 찬열의 큰 눈이 끔벅였다. 목덜미를 빨던 입술이 타액으로 번들거렸다.
"저 앞에 자판기에서 뽑아 올게."
찬열은 입맛을 다셨다. 사실, 말하면서도 생각이 바뀌기만을 바라며 드로즈 위 윤곽이 도드라진 종인의 성기를 부드럽게 주물렀다. 종인은 끙끙 앓으면서도 찬열의 회유에 고개만 저었다. 찬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종인에게서